(25.07.06) 광성교회 2부예배 | 주체할 수 없는 은혜_남광현 목사
2025-07-05 23:24:00
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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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할 수 없는 은혜 

마가복음 1:40-45

맥추절은 보리 첫 이삭을 가지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한 해 모든 추수를 다 마치고 감사하는 장막 절이 있는데, 왜 굳이 첫 열매를 가지고 감사하는 것일까요? 오늘날은 농사도 짓지 않는데, 왜 굳이한 해의 절반을 보내는 이 때를 맥추감사절이라 하여 감사를 드리자 하는 것일까요? 주체할 수 없는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한 나병 환자를 고쳐주시며 엄히 경고하여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왜요? 주체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1. 마음을 만져주시는 은혜 (40-41)
나병은 하늘이 내린 병으로 생각했습니다. 보기에도 피부가 변형되고 얼굴이 문드러져서 문둥병 이라 했습니다. 전염병이었기에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는 마을 밖에 나가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혹 마주치면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습니다.(레 13:45) 더러운 죄인이니 나를 멀리하라는 사인입니다. 안 그러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나병은 사람 됨을 부정당하는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왜 ‘원하시면’이라 했을까요? 자신을 저주받은 자로 생각한 것이고, 그만큼 절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어떻게 응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41절)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아무도 접촉하기를 싫어하는 나병 환자인데 일부러 다가가 만져주십니다. 주체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는 마음을 만져준 것입니다. 너도 사랑받는 자녀라는 메시지입니다.

2.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은혜 (42- )
나병 환자에게 있어서 문제는 무엇일까요? 나병입니다. 나병이 그의 인생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찾아와 구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다가와 몸을 만져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때였습니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42절) 할렐루야! 주체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얼마나 감격 스러웠겠습니까? 병이 떠나갔습니다.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완전한 문제의 해결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께서 나병을 치유해주셨다는 것은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 다. 죄를 사하시고 깨끗게 하시는 칭의(稱義)의 은혜,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큰문제는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가 모든 것을 가져갔습니다. 자유도, 기쁨도, 행복도, 생명도, 하나님 나라 천국도 다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당신 몸에 옮기시고 십자가에 달리사 죗값을 다 치러주시고 우리를 깨끗게 하셨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3. 생활을 회복해주시는 은혜 (43-45)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44절)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나는 이제 다 나았다 하여 바로 마을로 들어가다가는 동네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4장에 의하면, 나병에서 나았다 생각하는 자는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했습니다. 제사장 진단에 다 나은 것 같다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 지켜야 할 절차와 의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하는 까닭은, 이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가 다 나았다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야 두렴과 염려 없이 반가운 교제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잃어버린 일상의 삶, 풍성한 생활을 회복시켜주셨습니 다. 주체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칭의의 은혜를 넘어 성화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주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배와 전도로의 분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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